본문 바로가기
  • Zeze&mingkingU
시사 정보

최고의 명품 샤넬 , CHANEL

by 제제와밍킹유 2021. 2. 16.
반응형

최고의 명품 샤넬

 

 

 

브리엘 샤넬은 1883년에 프랑스 소뮈르(Saumur)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장돌뱅이였던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난 것에 관심조차 없었고 어머니는 병에 걸려 그녀가 어릴 때 사망했다.

가브리엘 샤넬은 오바진 수녀원(Abbey of Aubazine)으로 보내져 7년여 간 머무르며 바느질을 배웠다.

그녀는 이곳에서 금욕주의와 블랙 앤 화이트(Black & White) 컬러의 수녀복 의상,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 색유리를 이어 붙이거나 유리에 색을 칠하여 그림으로 나타낸 장식용 판유리)로부터

샤넬 디자인의 영감을 얻었다.

성인이 된 가브리엘 샤넬은 수도원을 나와 봉제회사를 다니며

저녁에는 카페에서 가수로 일했다.

당시 그녀가 부른 노래 때문에 ‘코코’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고,

가브리엘 샤넬은 후원자인 아서 에드워드 카펠(Arthur Edward Capel)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1910년에 파리의 패션 거리 캉봉가(rue Cambon)에 샤넬 모드(Chanel Modes)라는 모자 가게를 열었다.

가게 오픈 초기에 샤넬이 선보인 수수하고 간편한 모자는 상류층 부르주아 여성들에게 외면 당했는데,

당시 유명한 연극 배우였던 가브리엘 도르지아(Gabrielle Dorziat)가 자신의 연극

‘멋진 친구들(Guy de Maupassant’s Bel-Ami)’에서 샤넬의 모자를 착용하면서 상류층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얻게 되었다.

1913년 가브리엘 샤넬은 모자 디자이너로서 성공한 것을 기반으로 해양 휴양도시였던 도빌(Deauville) 지역에

최초의 부티크를 오픈했다. 부티크의 블라인드에는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이라는 이름이 대문자로 새겨져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샤넬 [CHANEL] 

 

 

 

 

 

 

샤넬의 정의 및 기원 샤넬(CHANEL)은 가방, 의류, 향수, 선글라스, 주얼리, 시계 등을 제작 · 판매하는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로,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샤넬은 1913년 부티크(Boutique) 오픈을 시작으로 1920년대 코르셋(Corset)과 무거운 페티코트(Petticoat, 여성용 속치마)의 굴레에서 벗어난 니트 카디건, 저지 원피스 등의 편안한 스포츠 모드(Sports Mode) 의류를 선보였다. 이후에도 샤넬은 끈 달린 클러치 백, 주머니 달린 재킷 등 기능성과 심미성을 조화시킨 새로운 형태의 의복을 출시했다. 1982년에 샤넬은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를 영입했는데, 그는  샤넬을 새롭게 재창조해 올수 있었던 최고의 디자이너였다. 

 

910년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 1883~1971)이 탄생시킨 브랜드 샤넬은 1세기가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여성들이 가장 선망하는 패션 브랜드다. 1930년대부터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시작한 데 반해 시계는 1987년에 첫선을 보였는데, 여느 패션 아이템처럼 샤넬이 가장 사랑한 아이콘들로 풀어냈다. 샤넬의 전설적인 향수 N°5의 마개처럼 방돔 광장의 형태를 모티브로 한 케이스를 가진 프리미에르(Première)를 시작으로 그녀가 좋아했던 꽃 까멜리아(Camelia), 퀼팅 무늬를 살린 마틀라세(Matelasse), 아르데코 스타일의 1932, 정사각형의 마드모아젤(Mademoiselle)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샤넬만의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2000년 런칭한 J12다. J12는 요트와 자동차 경주를 사랑했던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크 엘루(Jaques Helleu)의 진두지휘 아래 자그마치 7년의 준비와 연구 끝에 탄생했다. 이름은 12미터급 J 클래스 요트 경주 대회에서 가져왔다. 지금은 유니섹스 시계로 손꼽히지만 초창기에는 여성 패션 브랜드임에도 남자 시계로 구상했다고 한다. J12는 케이스부터 스트랩까지 세라믹 소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세라믹은 몰딩 방식으로 둥근 곡면의 링크를 만들 수 있었고, 금속이 주는 피부 알러지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가볍고 견고했다. 당시 라도나 IWC 다빈치 등에서만 사용했던 세라믹 소재를 대중화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J12는 그 후 계속 라인을 확장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샤넬 [Chanel] - 브랜드 특유의 유니크한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시계                                            (시계이야기, 2011.09.01, 정희경- 출처)

 

 

 

창업 ~ 샤넬 N°5 론칭(1913~1924)

부티크를 오픈한 후, 가브리엘 샤넬은 휴양지에 어울릴 만한 단순하고 편리한 옷을 디자인했다. 그 중 첫 번째로 출시된 의상은 여성복 ‘카디건(Cardigan)’이었다. 가브리엘 샤넬은 항구도시인 도빌의 날씨가 차고 습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폴로 경기장에서 보온을 위해 남성들이 착용했던 니트 셔츠에서 힌트를 얻어 카디건을 개발했다. 카디건은 기존에 거추장스럽던 코르셋과 페티코트를 착용할 필요 없이 느슨하고 헐렁하게 디자인된 점이 특징이었다.

샤넬이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9년) 때였다. 전쟁 발발과 함께 여성들의 노동력이 요구되어 여성들은 화려한 장식이 어우러진 기존의 의복 스타일보다는 샤넬의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에 매력을 느꼈다. 샤넬은 남성 속옷에 사용되었던 얇고 가벼운 저지(Jersey) 천을 투피스에 활용해 여성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투피스는 1916년 3월에 파리인의 엘레강스(les Elégances Pariennes) 잡지와 같은 해 미국의 유명 잡지인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에 소개되었고, 1917년 2월 미국의 보그(Vogue)지에도 소개되어 극찬을 받았다.

 

 

 

 

 

 

 

 

 

 

대외적인 명성을 얻게 된 샤넬은 1918년에 파리 패션의 중심지였던 캉봉가 31번지로 진출했다. 이후 샤넬은 엉덩이 부분 옆 선에 주름을 넣어 만든 샤넬 라인 원피스를 비롯해 큰 호주머니를 단 짧은 소매 재킷(Jacket), 길고 따뜻한 머플러(Muffler) 등을 추가로 출시하여 1920년대 자유로운 복장을 원하던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1921년, 샤넬은 첫 번째 향수이자 최초의 배합 향수인 ‘N°5(Number Five)’를 출시했다. 샤넬은 ‘N°5’의 성공에 이어 1922년에는 ‘N°22’, 1925년에는 가드니아(Gardenia), 1926년에는 브와 데 질(Bois des Iles), 1927년에는 뀌르 드 뤼시(Cuir de Russie)라는 향수를 잇달아 출시했다. 샤넬은 1924년에 향수와 화장품 라인을 제조 · 판매하는 별도의 샤넬 향수회사를 설립했다.

 

1935년 샤넬은 4천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캉봉가에 5개의 빌딩을 소유할 만큼 성장했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의 발발과 함께 액세서리와 향수 점포만 남긴 채 부티크 문을 닫아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 가브리엘 샤넬의 죽음(1936~1971)

1954년, 15년간 파리를 떠났던 샤넬이 71세의 나이로 돌아와 부티크를 다시 열고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여성들은 전쟁 동안 입었던 실용적인 의상에서 벗어나 우아하고 화려한 의상을 찾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은 코르셋과 부풀린 스커트로 허리 라인을 강조한 뉴룩(New Look)을 출시했고, 이는 패션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샤넬은 이러한 트렌드가 특정 상류 계층만을 위한 것이라 주장했고, 1954년 2월 저지, 진주 등을 결합한 편안한 의상들이 주를 이룬 샤넬 컬렉션을 선보였다. 파리와 유럽의 비평지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발표회’라며 혹평한 반면, 미국의 패션계에서는 ‘현대 여성의 욕구에 부합하는 옷’이라며 크게 호평했다.

1950년대 샤넬 슈트(1956)

1954년 샤넬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져온 트위드 소재(Tweed, 순모로 된 스코틀랜드산 직물)를 활용해 샤넬 슈트(Chanel Suit)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계절에 관계없이 여러 해 동안 입을 수 있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스테디셀러(Steady Seller, 꾸준히 잘 팔리는 제품)로 자리 잡았다. 1955년 2월에 샤넬은 금색 체인이 달린 퀼팅 숄더백(Quilting shoulder bag)을 출시했는데, 출시 날짜를 따서 2.55백이라고 불렀다.

1957년 샤넬은 미국 댈러스(Dallas)에서 20세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패션 오스카상(Fashion Oscar)’을 수상했다. 1971년 1월 10일, 샤넬은 87세의 나이로 37년 간 머물렀던 파리 리츠호텔(The Ritz Paris)에서 별세했다. 리츠호텔에서는 샤넬을 기리기 위하여 그녀가 머물던 방을 ‘코코 샤넬 스위트 룸(Coco Chanel Suite)’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칼 라거펠트 영입 이후(1982~2013)

1982년, 칼 라거펠트가 샤넬에 영입되었다. 당시 칼 라거펠트는 파리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 고급 여성복)가 아닌 기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이러한 그의 경력이 거센 반발과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지만 1983년 1월에 가졌던 첫 데뷔 무대를 성공시킨 이후, 칼 라거펠트는 기존 샤넬 아이템과 대중적인 문화 요소를 조합시켜 샤넬을 젊고 캐주얼한 브랜드로 변화시켰고,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브랜드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샤넬은 1984년에 향수 코코(Coco)를 새롭게 출시했고, 1987년에는 시계 부서를 설립하여 샤넬 최초의 시계인 프리미에르(Première, 최고)를 출시했다. 1993년에는 샤넬 최초의 파인 주얼리 컬렉션을 출시했고, 1999년에는 스킨 케어 화장품인 프레씨지옹(Précision, 정밀함)을 출시하며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갔다.

2005년, 샤넬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샤넬전(Exhibition CHANEL)을 개최했고, 2008년에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와 함께 움직이는 전시회인 모바일 아트(Mobile Art)전을 열어 1년간 아시아와 미국 등을 순회했다. 이 전시회에는 약 20여 명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는데, 샤넬의 2.55 핸드백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 등이 전시되었다.

 

 

 

 

 

CHANEL 

 

 

 까멜리아(Camellia)

가브리엘 샤넬은 장수와 풍요, 그리고 영원을 상징하는 까멜리아(Camellia, 동백꽃)가 악한 기운을 없애준다고 믿어, 이 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한 까멜리아를 활용해 그녀의 리틀 블랙 드레스에 악센트를 주었다. 까멜리아는 숙련된 공예 장인들의 수작업을 거쳐 만들어졌다. 샤넬의 공예 장인들은 꽃의 모양과 형태를 잡아주기 위해 꽃잎을 하나하나 하트 모양으로 자르고 암술 모양을 섬세하게 중앙에 세공해 ‘까멜리아’ 주얼리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샤넬의 까멜리아 장신구(1932)

퀼팅 패턴 숄더백(Quilting Pattern Shoulder Bag)

샤넬은 1955년에 퀼팅(Quilting) 패턴 숄더백을 출시했다. 이 백은 숄더 체인과 퀼팅 패턴이라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숄더 체인은 샤넬이 스트랩이 있는 군인 가방에서 착안한 것으로, 클러치 백(Clutch Bag, 손에 드는 여성용 작은 지갑)에 끈을 달아 준 것이었다. 이로써 여성들은 가방을 착용하고도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퀼팅 패턴은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넣고 누비질을 하는 것으로 샤넬은 퀼팅으로 다이아몬드 패턴을 표현했고, 지금까지도 이 퀼팅이 적용된 핸드백은 샤넬의 대표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1) 샤넬 N°5(Chanel N°5)

샤넬의 첫 번째 향수 ‘N°5(1921)

샤넬N°5(Chanel N°5, 샤넬 넘버 파이브)는 1921년에 조향사인 에르네스트 보(Ernest Beaux)가 만든 샤넬의 첫 번째 향수이다. 이 제품은 장미 향과 라일락 향 등 단일 향수가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재스민 향기를 기본으로 80여 가지의 성분들을 배합시켜 제조되었다.

향수 이름에 왜 숫자 ‘5(파이브)’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전해지고 있다. 샤넬 N˚5가 샤넬에게 보내진 향수 샘플 중 5번째이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5’가 샤넬의 행운의 숫자였기 때문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진 않다. 당시 드라마틱한 향수 이름들 사이에서 N°5라는 이름은 차별성이 있었고, 반듯한 정사각형의 모던한 병 디자인과도 잘 어울렸다. N°5는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며 샤넬의 대표 아이콘이 되었고, 이후 팝 아티스트(Pop Artist)로 유명한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이 향수를 실크 스크린(Silk Screen)으로 묘사해 대중적인 관심을 모았다.

2) 레드 립스틱(Red Lipstick)

샤넬의 레드 립스틱(1924)

레드 립스틱은 1924년에 샤넬이 처음으로 자신만의 개성과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제품이다. 가브리엘 샤넬은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는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 립스틱을 바르고 색상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 그 위에 파우더를 덧발랐다고 한다. 가브리엘 샤넬은 그 중에서도 주홍빛을 띤 레드를 특히 좋아했는데, 자신의 기호에 맞춘 레드 색상을 발표하고 이를 ‘샤넬 레드(Chanel Red)’라고 불렀다.

피터 필립스(Peter Phillps)와 같은 샤넬의 메이크업 크리에이터(Make-up Creator)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레드 컬러 중 샤넬만의 특별한 레드 컬러를 찾아 세계여행을 다녔다. 이 때 세계 각 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고 영감을 받았는데, ‘루주 드 서울(Rouge de Seoul)’도 그 중 하나다. 2002년 한 · 일 월드컵 때 한국을 방문했던 샤넬의 메이크업 크리에이터는 서울을 물들였던 붉은 악마의 물결에 큰 감동을 받았고, 파리로 돌아가 태극기의 레드 색상과 같은 레드 립스틱을 한정 상품으로 출시했다.

3) 코스튬 주얼리

코스튬 주얼리(1924)

가브리엘 샤넬은 어린 시절에 보았던 교회의 장식에서 심플한 그녀의 패션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코스튬 주얼리’의 화려함을 발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상황이 여의치 못한 점을 감안한 샤넬은 코스튬 주얼리 라인을 출시하게 되었다.

당시 샤넬은 러시아 정원, 왕의 왕관과 십자가의 화려한 모습에 영향을 받아 코스튬 주얼리로 재현했고, 1924년에는 영국의 부호였던 웨스트민스터 공작(Duke of Westminster)에게서 받은 희귀하고 귀한 보석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코스튬 주얼리로 재현했다. 가브리엘 샤넬이 사망한 후, 이 보석들은 천천히 잊혀졌지만 1983년에 칼 라거펠트는 가브리엘 샤넬이 즐겨 사용했던 소재들을 재해석해 팔찌와 목걸이, 귀걸이 등 다양한 코스튬 주얼리를 다시 출시했다.

4) 리틀 블랙 드레스

다양한 종류의 컬러들이 넘쳐나던 1920년대, 샤넬은 상복을 상징하는 컬러였던 블랙을 활용하여 ‘리틀 블랙 드레스’를 제작했다. 1926년에 처음 출시된 이 제품은 남성들의 속옷으로 쓰였던 저지 소재를 활용하여 여성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전체 라인을 디자인했고 크레이프(Crepe), 레이스(Lace) 등을 이용하여 변화를 주었다. 이 제품의 성공으로 블랙과 화이트의 조합은 샤넬의 대표 색상이 되었고, 일반 의복에서 자주 활용하는 대표적인 색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칼 라거펠트는 리틀 블랙 드레스의 상징적인 의미를 기리기 위해 실크(Silk)뿐만 아니라 시폰(Chiffon), 니트(Knit), 벨벳(Velvet), 모슬린(Muslin), 새틴(Satin)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여러 차례 재 디자인한 제품을 출시했다.

칼 라거펠트가 새롭게 디자인한 리틀 블랙 드레스

5) 2.55백

‘2.55백’이란 명칭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1955년 2월에 출시되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마드모아젤 락(Mademoiselle Lock, 마드모아젤은 여성을 높이 부르는 표현으로 가브리엘 샤넬을 부르는 명칭으로 자주 사용됨)’이라는 네모난 잠금 장치가 있고, 쇠사슬처럼 꼬아진 금속 숄더 체인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 체인은 스트랩이 달린 군인 가방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2005년에 칼 라거펠트는 2.55백 출시 50주년을 기념해 2.55백의 최초 모델을 재해석한 가방을 선보였는데, 마모된 흔적을 표현한 빈티지 제품이라는 점이 특징이었다.

CHANEL 2.55백(1955)

6) J12 워치

‘J12 워치’는 샤넬의 디자이너인 자끄 엘뤼(Jacques Helleu)가 바다 항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2000년 11월에 샤넬의 기본적인 색상 코드인 흰색과 검은색 두 종류로 출시되었다. 이것은 샤넬에서 처음 선보인 스포츠 시계로 샤넬 최초의 유니섹스(Unisex, 남여공용) 디자인이었다. 자끄 엘뤼에 따르면 ‘시대를 초월하는 불멸의 광택이 나는 블랙 워치’를 만들고자 했는데, J12 워치는 그가 생각하고 있던 모든 시계의 특징들을 두루두루 갖추었다고 한다. J12 워치는 12미터급 J-class요트 대회에서 제품의 이름을 따왔으며, 광택이 나고 스크래치에도 잘 견디는 세라믹 소재가 사용되었다.

J12 워치(2000)

[네이버 지식백과]샤넬 [CHANEL] (세계 브랜드 백과, 인터브랜드)

 

 

 

 

 

 

샤넬 브랜드 특징

1) 관대한 패션 트렌드 리더

샤넬은 ‘거리를 오가는 평범한 여성들에게 어울리는 옷,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옷’이라는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모조품에 대한 온건한 샤넬의 반응이다. 1920년 미국 기성복 산업이 발달하자 활동성이 뛰어난 샤넬의 명품들은 불법 복제품의 타깃이 되었다. 수많은 바이어들이 샤넬 제품을 사서 대량으로 기성복을 제조했다. 가브리엘 샤넬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옷은 처음부터 매력이 없다’라고 주장해 기성복 대량 생산에 대해 한 차례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늘날 샤넬의 2.55백과 트위드 재킷은 타 패션 브랜드에서도 흔히 응용하고 있어 일반적인 소재처럼 인식되고 있다.

2) 실용주의를 선도한 디자인

샤넬 제품들은 ‘20세기 여성들에게 자유를 선물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여성들을 위한 실용적인 의상에 그만큼 신경을 썼다는 의미다. 샤넬은 당시 남성용 의상에만 쓰였던 저지 소재를 활용해 유연성을 갖춘 여성복으로 만들어 여성들의 허리를 옥죄었던 코르셋을 벗도록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샤넬은 운전기사의 코트에서 착안하여 방수 기능이 뛰어난 고무 레인코트를 만들었고, 그 이후에도 재킷에 포켓을 달거나 핸드백에 어깨 끈을 달아 활동성이 높은 제품을 선보였다.

3) 자부심을 선사하는 귀족 마케팅

최상류층을 겨냥한 귀족 마케팅은 샤넬의 성공 요인 중 하나다. 귀족 마케팅은 자신의 위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고소득층 고객들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샤넬은 이런 고객들이 제품 구매 시 자부심이 생길 만한 가격을 책정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TV나 신문과 같은 대중 매체에는 샤넬의 제품 광고를 싣지 않았다. 샤넬의 이러한 선택적 마케팅은 샤넬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샤넬 [CHANEL] (세계 브랜드 백과, 인터브랜드)

 

CHANEL 

www.chanel.com/ko_KR

샤넬 공식 웹사이트 - 패션, 향수, 뷰티, 시계, 화인 주얼리

반응형

댓글